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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ensieve

하위징하 - 놀이와 시

  시는 놀이에서 생겨났다. 시에는 놀이의 즐거움, 환희, 쾌활함이 있다. 그리고 하위징하가 주장하기에는 시에는 의례적 행위 즉 부족과 같은 과거 의식에서 발전해왔다고 한다. 의례적인 교창형태로 응답과 가장, 공격과 역공, 질문과 대답, 도전과 응답의 형태를 취하며 남녀가 주고받는 놀이의 일종인 잉카푸카를 이러한 시의 놀이에 대한 형태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시조와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볼 수 있듯이 둘 사이의 신념의 대결을 주고받는 것. 즉 신념의 아곤적 요소를 볼 수 있다. 

또한 신화는 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서동요라는 예가 신화와 시가 합쳐진 가장 적절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하위징하는 결국 신화, 시가 그리고 놀이를 묶어서 관련짓는다. 시의 운율은 규칙적요소이고 신화적 요소도 있으며 아곤적 요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에 과장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운율적요소가 맞지만 모든 시에서 아곤적 요소를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신화적 요소는 모두 시가의 형태라고 주장하였지만 산문의 형태나 일반적 글의 형태로도 충분히 나타난다. 운율성과 함축적인 특징 만으로 재미의 요소를 중요시하여 시를 곧 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차라리 더 옳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보편적인 시에 모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신화는 시가의 형태로 나타난다’ 라던지 ‘모든 시는 놀이이며 아곤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와같은 주장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시는 운율과 재미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어 놀이에서 태어났다라고 할 수 있다’ 라고 고쳐 주장하고 싶다.